“불로초로 술을 빚어 만년배(萬年盃)에 가득 부어 비나이다 남산수(南山壽)를. 약산동대(藥山東臺) 어즈러진 바위 꽃을 꺾어 주(籌)를 놓으며 무궁무진 잡수시오.”
조선 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작자미상作者未詳의 〈권주가勸酒歌>의 한 대목이다. 필자의 할아버지 별명別名이 ‘어이! 내 술 한잔 받게’였다고 한다. 고을 주막에서 약주藥酒를 드실 때면 지나가
는 사람들에게 연신 “어이! 내 술 한잔 받게.”를 잊지 않고 말씀하시어 “그 양반 인심 한번 좋군….”이란 소릴 자주 들었다고한다. 요즘은 술을 권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기 쉽다. 술은 자기가 알아서 마시는 것이지 “왜? 강요해요?”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젠 술을 막 권하지 않는다. 예전의 회식에서 건배사는 하나같이 “마시고 죽자!”였다. 왜 마시고 죽어 버리자는 말인가? 지금의 신입사원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배사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는데 아직도 회식에서 술을 강권强勸하는 상사들이있다. “젊은 사람이 술도 한잔 못 하면 쓰나?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은 일도 잘 못하는 법이야. 어이 마셔! 자 화끈하게 마셔 봐.” 그들의 뇌리腦裏에는 상사가 주면 당연히 마셔야 한다는 불문율不文律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이 젊었을 때 상사가 따라주는 술을 거부拒否하는 것은 거의 회사생활을 포기抛棄하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기업의 간부幹部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폭탄주에 술을 강요하고 술이 조직 생활과 리더십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은 변했다. 변화變化와 혁신革新을 가장 강조하는 시대다. 술의 문화文化도 바뀌어야 한다. 술을 강요하는 것도 엄연히 업무희롱Work Harassment에 저촉된다. 술을 못 마시거나 안 마시는 사람이 일도 못 한다는 공식公式은 이미 깨지고 있다. 오히려 과음過飮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일에 큰 문제를 일으키며, 생산성도 좋지 않다는 연구보고서가 속속 나왔다.
– 술은 사람 관계를 좋게 한다. 그렇지만 다른 매개도 얼마든지 관계를 좋게 할 수 있다.
– 술의 첫 번째 덕목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 리더의 리더십 역량과 주량은 같지 않다.
음주 문화만 달라진 게 아니다. 과거에 상사와 식당에 가면 메뉴 주문에도 서열이 있었다. 상사가 짬뽕을 시키면 아래 직원들의 선택은 짬뽕과 짜장뿐이었다. “주문들 해요! 자유롭게 먹고 싶은 거 말해 개의치 말고, 어 난 짬뽕!” ‘헉, 자유롭게 시키라고 말이나 하지 말던가 참 나….’ 그렇지만 바로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아, 네. 전 짜장면, 네, 저도 짬뽕 먹겠습니다!” “어, 그래? 김 대리도 나처럼 짬뽕을 좋아하는군….” 요즘 신입사원들은 사뭇 다르다. 주위를 의식意識하지 않고 자기주장自己主張을 거침없이 하면서 살아온 세대世代다. 당당하게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한다.
“네, 전 유산슬덮밥이요. 부장님, 전 잡채밥이요.” 그날 부장님은 8,000원에다 12,000원짜리 덮밥까지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 이 당당함이 오히려 부러워진다. 우리 세대에서는 꿈도 못 꿔본 복수를 상사에게 대신 해주는 것 같아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 나를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먹고 남을 위해서는 좋은 옷을 입자. (벤저민 프랭클린)
– 음식을 같이 먹는 사람은 동료(Companion, 빵을 함께 먹는 사람)이자 식구(食口)이다.
– 리더와 나누는 음식은 음식 그 이상이다.
상사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결정決定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결정들을 부하직원들과 함께 나눠보자. 회식 장소를 결정하거나 무엇을 먹을지 막내 직원에게 그 결정권決定權을 던져 주자. 사랑하는 가족과 외식外食을 하게 되면 요즘은 아이들이 거의 결정을 하지 않는가? 자녀들이 좋아하며 먹는 모습을 보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부모가 가장 행복할 때가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을 볼 때’라고 한다. 훌륭한 부하직원들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행복하다면 당신은 이미 존경받는 리더이다.

글쓴이: Great Place to Work KOREA 지방근 대표